남녀 모두를 홀리는 향, 칵테일 품은 '베티버 모로코'

 
향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베티버(Vetiver)'는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향료다. 특유의 거친 흙내음과 뿌리의 쌉싸름함이 매력적이지만, 자칫 너무 남성적이거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엑스니힐로의 '베티버 모로코(Vetiver Moloko)'는 바로 이 지점에서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50ml에 28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아깝지 않을 만큼, 베티버를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해석해냈기 때문이다.
 
이 향수의 탄생 배경에는 조향사 기욤 플레비니(Guillaume Flavigny)의 짙은 노스탤지어가 깔려 있다. 그는 '모로코 플러스'라는 칵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이 향을 설계했다. 이름 속 '모로코(Moloko)'는 러시아어로 우유를 뜻하는데, 이 단어가 암시하듯 향수는 베티버의 건조함 속에 부드럽고 크리미한 뉘앙스를 절묘하게 숨겨놓았다.
 
덕분에 '베티버 모로코'는 이분법적인 성별의 경계를 허문다. 남성적인 우디 노트와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공존해, 남자가 뿌리면 섬세한 감성이, 여자가 뿌리면 시크한 카리스마가 살아난다. 텍스트에서 묘사된 "사랑의 미묘함을 표현한 알쏭달쏭한 향"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첫 향은 낯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살냄새와 섞이며 피어오르는 중독적인 잔향은 왜 이 향수가 '칵테일'을 오마주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단순히 좋은 향기를 넘어,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뻔한 꽃향기나 흔한 시트러스에 질렸다면, 이 오묘하고 관능적인 칵테일 한 잔을 피부에 입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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