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목전에 둔 고양이의 자세

 
평화롭던 오후, 간식 소리에 속아 욕실로 들어온 고양이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차가운 타일 바닥, 폐쇄된 유리 부스, 그리고 집사의 손에 들린 저 불길한 은색 물체(샤워기). 사진 속 고양이는 직감했다. "속았다!" 이 사진은 샤워가 시작되기 직전, 혹은 물이 닿은 직후 공포에 질린 고양이가 유리문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하는 결정적 순간을 담고 있다.
 
사진 속 고양이의 표정은 가히 압권이다. 평소의 도도하고 시크한 매력은 온데간데없다. 두 눈은 공포로 질끈 감기기 일보 직전이고, 입은 찢어질 듯 크게 벌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구조를 요청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하다. 두 뒷발로 위태롭게 서서 앞발로 유리를 긁어대는 저 자세에서는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는 간절함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고양이가 이토록 목욕을 싫어하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사막 태생인 고양이에게 물은 털을 무겁게 만들어 민첩성을 떨어뜨리고 체온을 급격히 뺏어가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샤워기는 시원한 물줄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인 셈이다. 그러니 저 고양이의 반응은 엄살이 아니라 본능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생존 투쟁이다.
 
하지만 집사의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다. 털에 묻은 먼지나 배설물을 닦아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악역을 자처해야 한다. 사진 속 집사의 다리는 굳건하다. 고양이의 애절한 눈빛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샤워기를 든 채 묵묵히 할 일을 수행하려는 비장함마저 엿보인다. 유리문은 고양이에게는 통곡의 벽이지만, 집사에게는 튀는 물과 발톱 공격을 막아주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 사진이 유쾌하면서도 짠한 이유는 우리네 집사들이 겪는 일상적인 딜레마를 완벽하게 시각화했기 때문이다. 씻기려는 자와 도망치려는 자. 사랑해서 씻기는 것이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니. 아마도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고양이는 털이 젖은 채 구석에 숨어 집사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리고 집사는 상처 난 팔을 문지르며 최고급 간식인 '츄르'를 바치며 화해를 청할 것이다.
 
유리창에 눌린 저 하얀 뱃살과 다급한 앞발은 귀엽지만, 저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오늘도 전국 각지의 욕실에서 벌어지고 있을 '냥빨 대첩'. 사진 속 고양이가 부디 따뜻한 드라이 바람과 맛있는 간식으로 이 트라우마를 빨리 잊기를, 그리고 집사의 팔뚝도 무사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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