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책벌레

 
우리는 흔히 책을 좋아하고 독서에 파묻혀 사는 사람을 일컬어 '책벌레'라고 부른다. 지식에 대한 탐구욕과 활자에 대한 사랑을 담은 긍정적인 비유다. 하지만 여기, 그 단어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그리고 아주 물리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활자를 눈으로 읽는 대신 이빨로 음미하고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책벌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빽빽하게 꽂힌 책들 사이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간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녀석은 책장 한구석이 마치 자신의 은신처라도 되는 양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책의 모서리를 야무지게 앙물고 있다. 종이의 질감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아니면 솟아나는 이갈이의 본능을 참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녀석의 표정만큼은 사뭇 진지하다.
 
사진 위에 적힌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줘?"라는 문구는 이 상황을 더욱 희극적으로 만든다. 녀석은 스스로를 책장을 지배하는 공포의 포식자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날카로운 이빨로 지식의 보고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괴수라고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혹은 다행히도) 이를 지켜보는 인간들의 눈에는 그저 솜털 보송한 귀여운 아기 고양이의 재롱으로만 보일 뿐이다.
 
녀석이 보여주고자 했던 '무서움'은 물리적인 위협이 아니라, 보는 이의 심장을 멎게 할 만큼 치명적인 귀여움이었던 모양이다. 책의 귀퉁이는 조금 헐거워질지언정, 녀석의 앙증맞은 앞발과 책을 씹는 저돌적인 모습은 집사의 하루 피로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물론 애서가들의 입장에서는 비명이나올 상황일 수도 있다. 소중한 장서가 고양이의 '치발기'로 전락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양이는 언제나 옳고, 책장 위에서만큼은 녀석이 법이다. 우리는 그저 이 귀여운 파괴자가 책의 내용을 머리가 아닌 배로 소화시키지 않기를, 그리고 부디 다음 타겟이 한정판 양장본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오늘도 책장 구석에서 조용히 '지식의 맛'을 즐기고 있을 이 아기 맹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너야말로 진정한 이 구역의 책벌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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